올바른 가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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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고있는 초가치(마크 카니 지음)라는 책을 읽다 드는 생각을 적어본다. 개인적 생각을 정리하고자하니 다소 중구난방한 지루한 글이 될 것 같다… )

지금 상황을 정리하면, 정말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첫문장과 같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분기점에 서 있다. 배우고자 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으며,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를 누리며, 놀라운 기술의 발전을 지켜보며 정말 인류가 호모 데우스로 갈 수 있는 시대. 말그대로 최고의 시절이고 희망의 시대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각자의 믿음만이 존재하는 분열을 시대, 모든 것의 가격을 알면서도 그 어떤 것의 가치도 알지 못하는 시대, 다음 세대는 생각하지 않는 욕심으로 비롯된 전쟁과 기후위기 위기가 존재하는 최악의 시절이자 절망의 시대다.

이 책에선 이런 시대에 “올바른 가치를 가지는 것"의 중요함을 얘기한다.

말이나 생각, 행동 따위가 이치나 규범에서 벗어남이 없이 옳고 바르다.

가치의 중요성을 말하기에 앞서 내가 생각하는 두가지 공리(자명한 진리) 두가지의 말해보겠다.

  • 인간은 죽는다.
  • 삶은 한번 뿐이다.

이 두가지를 통해 보면 무엇을 가치있게 두느냐에 따라 단 한번뿐인 삶을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지고, 그 결과도 달라진다. 이때, 나의 가치가 올바르다면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게 옳은 선택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가치에 대해서도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어리석고 앞으로도 어리석을테니 나의 판단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신뢰하면 안된다.)

2022년 5월 30일 오후 12시 1분, 현재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가치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삶

나는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고, 언제 죽더라도 절망이아닌 희망을 가진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런 나에게 해답을 제시해주고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의 기준에 두고 살아가면 내 삶에서 천국을 만들 수 있다.

예수님은 말한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예수님은 말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예수님은 말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두면 세상은 천국이 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면 내 삶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다.

이처럼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나의 판단 기준의 주춧돌로 둔다. 가르침을 토대로 삶을 바르게 보기위해 노력한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생각나는것 몇가지 적어보고 글을 끝내려한다.

  • 사람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야한다.
  • 직업엔 귀천이 있지만, 사람에겐 귀천이 없다. 사람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 사람은 노력하는한 방황하는 법이다.
  • 내가 원하는 곳은 내 손으로 가꾸어야하는 곳이지 남들의 손에 명령을 내리는 곳이 아니다.
  • 인류가 이뤄낸 위대한 유산을 빚지고 있으니 이 유산을 잘 보존해서 후세에 물려줘야한다.
  • 우리가 가진 기술과 성공의 열매를 우리보다 행운이 덜 찾아온 형제자매들에게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삶의 변함없는 규칙이다.
  • 성경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선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이다.
  • 상황은 변하는 것이며 과거의 우위가 미래의 우위를 보장해주지않는다.

난 신에게 나의 복을 바라지않는다. 타인의 복도 바라지않는다. 아무것도 구하지 않으며, 그 무엇도 원망하지 않는다. 오직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만을 마음에 새긴다. (마태복음 6장 5-13)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참고로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도 불신하지도 않는다. 신은 내가 알 수 없는 존재니 신이다. 교회에서 도저히 나로썬 이해할 수 없는게.. 하나님은 어디있나요? 성경에 써있어요. 성경은 누가썼나요? 하나님이요… 이건 증명 방식이 아니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기만자가 되고 싶지않다. 내가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은 인간은 모두 죽고, 삶은 한번 뿐이다라는 공리뿐이다.

(물론 난 어리석고 모자라니깐 내 삶에서 천국을 만들지 못하고 죽을 수 있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이미 내 아들 진우가 태어났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만족감을 느꼈으며 이는 천국의 맛일거라 생각한다.)

나는 예수님을 신이라 생각하기보다 진리라 생각한다. 예수님=진리 라고 생각하면, 다른 곳에 적용하기에 편한다. ‘너희가 삶에서 구원을 바라는가? 그럼 진리를 추구해라’처럼

(아.. 흠… 잡소리 하나만 더 해보자면, 자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는가? 음…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건 나의 욕망의 노예가 된다는 소리니 자유로운게 아니다. 인간이 진정 자유롭기 위해선 나의 행동의 기준을 정하여 살아야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내용일꺼다 아마) 즉, 나의 삶의 주인이 욕망이 아닌 좀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을 정하여 따라야한다. 나는 그 기준을 예수님의 가르침에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