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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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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을 품지 않은 믿음은 맹신이 되고, 맹신은 광신으로 이어집니다.

믿음이 깊은 자일 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의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명심하십시오. 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려 하면 안됩니다.

때로는 신의 뜻이 틀렸다고 자신이 직접 판단할 줄도 알아야합니다. 신 말고도 자기 자신을 믿어야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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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일한 세계에서 살지만, 각자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세상을 보고 해석한다. 그것은 신념이며, 21세기 초인 오늘날, 수십억 명의 마음속에 틀린 신념이 넘쳐나고 있다.

나는 진실을 알고 싶으며, 잘못된 신념을 가지게 될까 항상 조심한다.

나는 이제 더이상 아래의 신념을 믿지 않는다.

- 천지창조

- 원죄 의식

- 영혼의 존재와 영생

그리고 아래의 생각을 기초로 삶을 살아간다.

- 예수의 가르침,

- ‘삶은 무죄이기에 속죄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 모든 것은 변한다.

-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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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믿고 싶은 누군가가 언젠가 짐에게 농담처럼 조언하더군.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가는 자를 조심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언제가 다가올 완전성을 기다리고 있어. 우리 당대에는 절대로 볼 일이 없는 그것을. 이 시점에서. 짐은 그 조언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혹 그대는 짐작되나?”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가는 자를 조심하라고요?”

 “그래.”

 잠깐 생각하던 라수는 곧 쏟아내듯이 말했다.

 “예. 그런 말이 있지요. 폐하. 근사하게 들리는 말입니다만, 그 말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순간 그 자는 자기 부정에 빠지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완성하려면,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이어야 하니까요.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순간 그 자의 인생은 완성되지 못한 것, 불족한 것, 불결한 것, 경멸할 만한 것으로 전락됩니다. 이 멋지고 신성한 생이 원칙적으로 죄를 가진 것이라는 판결을 받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그 자는 다른 사람의 인생마저도 그런 식으로 보게 됩니다. 자기 인생을 뭐라고 생각하건 그건 그 작자의 자유입니다만,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그렇게 보면 문제가 좀 있지요.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어떤 두억시니였어.”

 라수는 폭소를 터뜨렸다. 사모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라수를 바라보았다.

 “감동적이군요. 두억시니가?”

 “그게 왜 감동적이지?”

 “5년 전까지 우리는 흔히들 두억시니가 죄의 대가로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지요. 신을 잃은 죄 때문에. 그런데 그 두억시니 중 한 명이 생은 원래 무죄이기에 완성하려, 속죄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군요.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 두억시니는 우리에게 닥쳐올 변화에 대비하라고 말한 겁니다.”

 라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다음 계속 말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완전성은, 물론 저는 그것이 무엇일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최소한 불완전성의 반대 개념이 아닙니다.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작자들이 말하는 완전성과는 전혀 다른 것일 겁니다. 그런 자들이 말하는 완전성은 고정이고 정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그 완전성은 어쩌면 무수한, 끝없는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변화하는 완전성이라니. 기묘하게 들리는데.”

 “예. 저 자신에게도 그렇게 들립니다. 물론 제 말은 가설일 뿐이고 우리가 첫 번째 종족처럼 되기 전까지는 가설로 남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일지 짐작하기 어렵더라도, 이제부터 우리에게 다가올 변화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이상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어서 자기 완성을 부르짖는 사람처럼 될 필요는 없습니다. 변화는 항상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론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왕이 있습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

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눈물을 마시는 새 4권 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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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희망이 무엇이냐? 네가 원했던 것이 무엇이냐?”

“사랑하기 위해 사는 삶”

“왜 이해할 수 없을까? 입장을 바꿀 수는 없을까? 길지 않은 생. 가슴에서 피비린내를 풍기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의 서로 다른 겉모습은 광적인 증오의 원인이 아니라 다시 없이 커다란 축복이 아닐까? 사람은 새로움 속에 살아간다. 모든 것은 항상 바뀌어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늘이 덮인 저 남부의 이방인들을 우리의 의식과 지혜를 발전시킬 새로운 자극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가장 고마운 선물이 아닐까? 대상이 없는 사랑은 없다. 그리고 새로운 대상은 새로운 사랑을 약속한다. 남쪽에서 온, 비늘 덮인 그들은 나의 또 다른 형제며 혈육이다. 그리고 축복이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들은 얼마나 고마운 자들인가.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하나 더 얻었다.”

케이건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조소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 

눈물을 마시는 새 4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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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를 망쳐버렸다. 갈로텍.”

“아니요. 당신은 누구도 넘보기 힘든 집념으로 자신을 완성했습니다. 주퀘도. 당신은 이제 시구라이트의 정복자입니다.”

“그건 완성이 아냐. 빌어먹을 가필이지.”

“가필이라고요?”

“염병할 붓질은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일필휘지야. 갈로텍. 나는 괜찮은 삶을 살았다. 주퀘도 사르마크의 삶은 찬란했다. 그래. 나는 죽음의 거장이었다. 내 최고의 순간이 언제인지 아나? 그것은 내 존재의 모든 시간이었다. 나는 항상 최고였다. 내 마지막 실패는. 그것이 내 실패이기에 이미 소중한 것. 최고의 것이었다. 그것은 완전무결함에 난 흠집 같은 것이 아니었어. 그것까지도 포함해서 완전무결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소중한 실패를 망쳐버렸다. 스스로 구축한 작품을 망쳐버렸지.”

“주퀘도.”

“갈로텍. 갈로텍.”

주퀘도는 회한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갈로텍은 자신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동요했다.

“고집이라면 너도 나만큼 부릴 줄 아는 녀석이지. 마음껏 고집을 부려라. 집념을 발휘해라. 도덕을 요구하는 나약한 것들의 천박한 투정 따위는 무시해. 그것들은 도구인 도덕을 삶의 목적으로 만들어버려. 그리고 목적인 삶을 도덕의 도구로 바꾸지. 그런 것들은 무시해. 생사를 무시하고 누이를 괴물로 만들었다고 힐난하는 것들은 아가리 닥치라고 말해 줘. 신을 감히 감금했다고 파랗게 질린 것들의 얼굴에 오줌을 갈겨줘. 죽음의 거장은 그런 너를 축복하겠다. 하지만 제발 죽을 때 까지만 그렇게 해라. 이제 나는 언젠가 네가 천명했던 소망을 간절함 속에서 기다리겠다. 전령하지 말고 죽어라. 부탁이다. 이후로 내가 스스로의 말을 번복하더라도. 너는 그말을 따르지 마라. 지금의 내 말을 기억해.”

눈물을 마시는 새 4권 p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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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을 글로써 표현하는 능력을 가진 부러운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글을 매번 읽을 때 마다 그녀의 사유와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과장되지않고 꾸밈없는 글.

내가 보지 못하는 시선으로 세상을 글로 담아낸다. 참으로 부럽다.